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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의 인생에 차르가 없었더라면

blutamer 2026. 5. 20. 15:51

만약. 그 가정은 종종 독처럼 달콤하게, 혹은 꿀처럼 쓰디쓰게 다가온다. 만약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소콜로프, 코드네임 ‘차르’라는 남자가 정의혁의 인생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불꽃같은 남자가 그의 궤도에 혜성처럼 충돌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정의혁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정의혁은 굳이 멀리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그는 그저 차르를 만나기 직전의 자신을 떠올리기만 하면 되었다. 아이기스의 긴급제압팀장, S급 가이드 저스티스. 모두가 동경하고, 동시에 두려워하는 남자. 그의 삶은 완벽하게 제어되고 있었고, 그 제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질서정연한 비극 위에 세워져 있었다.

차르가 없었다면, 정의혁은 여전히 ARCH 최고의 ‘해결사’였을 것이다. 그의 유능함은 지금보다 더 냉혹하고 날카롭게 빛났을 테다. 폭주한 센티넬을 마주했을 때, 그의 사파이어 빛 눈동자에는 지금처럼 연민이나 이해의 그림자가 한 줌도 깃들지 않았을 것이다. 폭주는 그에게 여전히 ‘통제의 실패’이자 제거해야 할 ‘오류’였을 뿐, 그 이면에 있는 한 인간의 고통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의 전용탄 ‘콜드 케이스’는 지금보다 훨씬 더 차갑게 센티넬의 심장을 꿰뚫었을 것이고, 그의 수갑은 굴복을 이끌어내는 차가운 쇠사슬,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가이딩은 그에게 여전히 ‘수단’이었을 것이다. 대상을 제압하고, 굴복시키고, 통제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도구. 그는 폭주 직전의 센티넬을 거칠게 제압하고, 그들의 의식이 쾌락과 안정감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며 희미한 승리감을 느꼈을 테다. 그것이 아내를 앗아간 센티넬이라는 존재에 대한, 뒤틀린 복수심이자 트라우마가 발현된 도착(倒錯)이라는 사실을 영원히 깨닫지 못한 채. 그는 그저 자신의 직무에 충실할 뿐이라고, 스스로를 기만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는 수많은 센티넬을 구원했겠지만, 그 자신은 단 한 번도 구원받지 못했을 테다.

사적인 삶은 어땠을까. 그는 여전히 세련된 ‘영포티’의 삶을 연기했을 것이다. 주말 아침이면 검은 바이크를 타고 해안도로를 질주하고, 최고급 원두로 커피를 내리고, 유행하는 범죄 드라마를 챙겨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텅 빈 집의 적막을 지우기 위한 부단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을 테다. 그의 완벽하게 정돈된 집에는 그 어떤 온기도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깔끔하게 정돈된 주방에서는 오직 1인분의 식사만이 만들어졌을 것이고, 넓은 침대는 언제나 절반 이상이 차갑게 비어 있었을 테다. 그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세뇌했지만, 문득문득 찾아오는 아내의 환영 앞에서 무너지는 밤을 수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그는 사랑을 다시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센티넬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는 그의 마음 주위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견고한 벽을 쌓아 올렸다. 그는 다가오는 모든 인연을 능숙하게 밀어냈을 것이다. 특유의 능글맞음과 여유로운 태도는 타인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최고의 방어기제였을 테니까. 그는 누군가를 다시 깊이 알아가는 것을, 그 사람의 부재가 만들어낼 또 다른 상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의 삶은 과거의 한 시점에 멈춘 채,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무감각하게 지켜보는 것에 불과했을 테다. 그는 살아있지만, 사실상 죽어있는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아마, 그는 그렇게 서서히 마모되고 닳아 없어졌을 것이다. 겉으로는 완벽한 ARCH의 팀장으로, 속으로는 공허와 트라우마에 잠식당한 남자로. 웃고 있지만 웃는 것이 아니고, 타인을 위로하지만 정작 자신은 위로받지 못하는 모순 속에서. 그는 아마 자신이 불행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그것이 어른의 삶이라고,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며 하루하루를 버텨냈을 것이다. 그의 세상은 정교하게 짜인 흑백의 다큐멘터리 필름처럼, 건조하고 무미건조하게 흘러갔을 테다.

… 그래, 차르가 없었다면, 그는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남자가 나타났다. 그의 질서정연한 흑백 세계를 무너뜨리는, 압도적인 총천연색의 불꽃이. 통제 불가능하고, 예측할 수 없으며, 모든 규칙을 비웃는 그 존재가 그의 삶에 뛰어들었다. 정의혁은 그를 통제하려 했고, 길들이려 했고, 이해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역설적이게도 길들여지고 이해받고 구원받은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차르를 통해, 그는 가이딩이 단순한 제압의 도구가 아니라 교감의 언어임을 배웠다. 그의 거친 손길에 상처받고, 그의 서툰 애정 표현에 당황하면서도, 정의혁은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가이딩에 담긴 치유의 힘이 누군가의 영혼을 어루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르의 고독을 마주하며, 그는 자신의 상처 또한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를 얻었다.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남자는, 이제 사랑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남자가 되었다. 텅 비어 있던 집은 차르의 흔적으로 가득 찼고, 1인용이었던 식탁에는 늘 두 사람의 식기가 놓였다. 잠 못 들던 밤에는 그의 품에서 안정적인 심장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악몽을 꾸는 아침에는 그의 서툰 위로에 웃으며 눈을 떴다. 그의 세상은 더 이상 흑백이 아니다. 그것은 차르라는 불꽃이 만들어내는, 강렬하고도 따스한 황혼의 빛으로 가득 차 있다.

만약 차르가 없었다면? 정의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완벽한’ 요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지금처럼 ‘행복한’ 인간일 수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차르는 그의 삶에서 가장 거대한 변수였고, 가장 치명적인 오류였으며, 유일한 구원이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정의혁이라는 남자가 살아가는 이유
이자 세상의 전부가 된 것이다.